공식아카운트

큰 힘과 기쁨을 안겨준 희한한 요술/명망높은 동포요술가 안성우씨를 추모하여

2021년 06월 02일 06:32 동포생활

명망높은 동포요술가인 안성우씨가 투병생활끝에 4월 11일 61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났다. 안성우씨는 세계와 아시아 요술계의 제일선에서 사업하면서도 조국을 여러번 방문하여 조국의 요술을 세계최첨단에로 올려세우기 위한 창작활동에 애국열정을 다하였다. 경탄과 감동을 자아내는 그의 희한한 요술기량은 언제나 우리 동포들과 학생들에게 큰 힘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안성우씨를 추모하는 동창생인 東大阪초급 고건식교장의 글을 소개한다.

안성우씨는 명망높은 동포요술가였다.(사진은 《판문점선언, 〈9월평양공동선언〉 지지실현 히가시오사까초급채리티매직쇼》, 2019년 2월 28일)

잊지 못할 친근한 벗

우리가 大阪조고(당시)를 졸업한지 벌써 43년이 지났다.

아직도 졸업식을 끝내고 부모님들앞에서 졸업공연을 하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속에서도 머리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한 연목이 바로 안성우의 요술이다. 관객들의 대절찬을 받았다.

나와 안성우는 大阪조고 동창생으로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다.

그는 쉬는 시간이면 우리의 청을 받아 요술을 자주 피로해주었다. 당시 우리 재일동포들중에 요술을 하는 사람은 드물어 안성우는 학생시기부터 주목을 받았었다.

안성우는 학생시절 우리 동무를 사랑하고 귀중히 여겼으며 인정이 많고 무슨 일에나 열정을 다할줄 아는 참된 조선청년의 기질을 지닌 동무였다. 하기에 그의 곁에는 언제나 남녀할것없이 항상 동무들이 모여들었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어느 시험기간에 우리 집에서 하루밤 공부를 함께 하던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 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대하던 모습, 나의 장점과 약점에 대하여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그가 가끔 가족처럼 여겨졌다.

방학기간에 함께 하루로동을 하던 때에는 《일이 힘들지 않아?》 하고 늘 걱정해주고 힘들 때면 즐거운 이야기를 하면서 힘을 북돋아준 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조고를 졸업한 후 안성우는 자신의 꿈을 꽃피워 이름난 요술사로 눈부신 활약을 하고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초소에서 사업하다가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내가 모교인 大阪조고에서 교편을 잡던 때 안성우의 아들(안태성, 현재 大阪조고 교원)이 고급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시기에 그의 담임을 맡게 되였다.

아들 역시 아버지처럼 순하고 솔직하며 항상 학급과 동무를 위해 헌신할줄 아는 학생으로 신망도 높았고 동무들의 사랑도 받았다.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도 大阪조고 축구부가 2005년도 《전국8강》의 쾌거를 이룩한것은 남아있을것이다. 바로 그 시기 축구부 주장을 맡은것이 안성우의 아들이다.

안성우가 조고시절부터 사귀던 동무와 결혼하여 그들의 아들을 담임하게 될줄이야 이 무슨 인연인가고 나는 몹시 기뻤다.

어느날 학생들에게서 조청과외활동의 일환으로 《우리 학급에 안성우선생님을 모시고싶습니다.》라는 제기를 받았다.

그 사연을 이야기하니 안성우는 세계를 활무대로 동분서주하는 바쁜 몸인데도 쾌히 승낙하여 시간을 내여 《학급모임》에 출연해주었다.

그는 학생들이 바라는대로 요술을 피로해주었을뿐만아니라 학생들에게 귀중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는 세계 각지에서 요술공연을 많이 하면서 언어력과 요술의 기술기량을 더욱 높이려면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느끼군한다, 그러니 학생시절에 공부를 더 잘해야 된다고 차근차근 학생들에게 일깨워주었다. 그러면서 요술활동으로 북남조선을 여러번 다니면서 《하나의 민족끼리, 하나의 조국》을 실현하기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할수 있었다는것이 자신의 긍지라고, 나아갈 어느 길에서나 조국통일을 위해 한몫 다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절절히 호소하였다.

2019년 1월 東大阪초급학교 교장이 되여 2년째가 되던 해이다.

한 동포의 발기로 《채리티매직쇼》를 조직하게 되였다. 안성우가 출연한 공연은 대성황리에 끝났으며 학교운영과 동포학부모를 묶어세우는 하나의 큰 계기가 되였다. 안성우는 그 수익금전액을 우리 학교에 희사해주었다.

大阪뿐만아니라 안성우는 일본 방방곡곡에 있는 우리 학교를 찾아 학생들에게 요술을 피로하고 학교지원사업에 헌신하였다.

진정 세계를 돌아다니며 화려한 무대를 펼치면서도 그는 언제나 조국과 민족교육의 사랑으로 가슴을 불태우고있었던것이다.

안성우는 민족교육의 화원에서 자란 우리 동창생들의 긍지이며 동포사회의 자랑이다.

너무나 일찌기 우리곁을 떠났다. 정말로 가슴이 미워진다.

이름난 요술가이며 우리 민족과 동포사회의 발전을 위해 한생을 바친 그를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다.

(고건식, 東大阪초급 교장)

안성우씨와 고건식교장(왼쪽, 사진은 필자제공, 《채리티매직쇼》 성공축하모임의 한 장면, 2019년)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남김없이 떨쳐/조국의 단체도 심심한 애도의 뜻 표하여

동포요술가 안성우씨의 부고에 접한 조국의 단체와 각지 동포들을 비롯한 개인, 단체들이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있다.

조선요술협회는 조전에서 안성우동지가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하면서 사회주의조국의 품에서 요술의 첫걸음을 떼고 총련과 동포사회의 믿음과 사랑속에 실력있는 요술가로 성장한 안성우동지는 지난 기간 수령님들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의 정을 안고 이역땅에서 요술로써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남김없이 떨쳐왔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안성우동지는 세계요술축전을 비롯한 여러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영예를 높이 떨치였으며 장군님께 흠모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삼가 올리고 최신 요술도구들과 요술자료들을 기증하여 조국의 요술발전에 이바지하였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수령님들과 원수님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심을 간직하고 조국의 요술발전에 적극 기여해온 안성우동지의 애국적헌신성을 감회깊이 돌이켜보면서 유가족들이 오늘의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애국애족의 한길을 억세게 걸어가리라는 굳은 확신을 표하였다.

민족의 발전에도 특색있게 기여/《요술을 통해 조국통일을 앞당기고싶다》

1959년 6월 9일생. 大阪조고 졸업. IBM世界奇術하와이대회 금상(1983년), 라스베가스세계매직대회 그랑프리(1987년), 松旭斎天洋賞(2007년) 등 갖가지 국제적인 대회에서 많은 상을 수여받았다. 조선을 여러차레 방문하여 조국의 요술발전에 기여하는 한편으로 북남교류를 위해서도 헌신하였다. 《요술을 통해 조국통일을 앞당기고싶다.》는 일념을 안고 재일동포요술가로서 2008년부터 남조선의 요술가후비양성에 적극 이바지해왔으며 조선의 요술단체가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요술단체와 문화교류를 가질수 있도록 하는 사업도 벌려왔다.

2012년에는 김일성주석님의 탄생 100돐을 경축하는 태양절에 즈음하여 진행된 제28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한 각국의 요술단의 단장을 맡아 요술공연의 연출도 맡았다.

앞서 2월에 진행된 제11차 쟈팬컵2012에서 가장 으뜸가는 상인 쟈팬컵상을 수여받았는바 이는 북남조선의 요술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는것이 수상리유였다고 한다.

그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자주, 평화, 친선이란 봄축전의 기본리념은 우리와 같이 요술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소원이기도 하다. 요술은 언어, 피부색갈, 종교, 사상, 국경과 같은것을 초월해서 누구나 다 즐길수 있는 세계공통의 대중예술이다. 봄축전과 같은 국가행사에 우리 요술가들이 참가할수 있다는것이 너무나도 영예스럽다.》

Facebook にシェア
LINEで送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