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자들・새로운 전성기를 향하여 7〉《객관적조건》넘어설 변함없는 결심/조청 미야기현본부 겸 도호꾸지방위원회


19년 12월에 센다이시내에서 진행된 도호꾸조청원들의 송년회(사진은 모두 조청본부 제공)

도호꾸지방 5현을 망라하는 조청 도호꾸지방위원회는 동포사회를 둘러싼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조청원들의 단합된 힘으로 시대의 요구와 현실에 맞는 새로운 방법으로 운동을 끊임없이 발전시켜왔다.

지역운동의 일체감을

심각한 과소화가 도래하는 속에 도호꾸에서는 09년부터 새로운 조직체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해나갔다. 당시 조청미야기 전임일군들과 비전임열성자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차를 몰고 넓은 령역에 흩어져 사는 동포청년들을 만나러 갔다. 이해 아오모리, 아끼따, 이와데현청상회로 구성되는 기따도호꾸청상회가 결성된것도 그들의 등을 떠밀어주었다.

원래 반조직이 꾸려져있던 아오모리, 이와데의 조청운동을 보다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09년 12월에 아끼따, 10년 5월에 야마가따에서 반조직을 재건하였다. 이로써 5개 을 망라한 조청 도호꾸지방위원회의 토대와 면모가 갖추어졌다.

조청본부상임들이도호꾸 각 현을 적극 찾아 동포청년들과 뉴대를 깊이고있다(야마가따에서 진행된 조청모임, 작년)

10년 5월 30일, 도호꾸지방조직의 재구축, 도호꾸지방위원회로서의 새 출발을 축하하는 모임이 도호꾸초중에서 진행되였다. 회장은 후꾸시마현을 포함하하여 도호꾸6현 70여명의 동포청년들의 열의로 들끓었다.

당시 도호꾸지방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미야기현청상회 김성길간사장(미야기현상공회 리사장)은 《도호꾸지방위원회가 결성됨으로써 이제까지 매 지역마다에서 벌리던 운동을 도호꾸지방이 하나가 되여 보다 일체감을 가지고 밀고나갈수 있게 되였다. 여기에 큰 의의가 있었다.》고 강조한다.

도호꾸지방위원회의 결성은 지역조청운동의 고조와 도호꾸동포사회의 밝은 앞날을 담보하고 조청원들의 단합된 힘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기어이 열어나가기 위한 도전이였다.

두가지 장벽

도호꾸지방위원회에서는 각반 반장들을 중심으로 지역적특성에 맞게 조청운동을 꾸준히 밀고나가는 한편에서 송년회를 비롯한 여러 마당에 조청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규모있게 행사를 조직함으로써 동포청년들끼리 뉴대를 깊이며 운동을 활성화시켜나갔다. 조청원들의 단합된 힘은 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東日本大震災를 이겨내는데서도 큰 힘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지방위원회활동은 침체되여나갔다. 많은 県들에서 반을 꾸리기조차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되였으며 조청맹원이 1명밖에 없는 지역도 생겼다.

두개의 장벽이 앞길을 가로막은것이다. 하나가 도호꾸조고의 휴교, 다른 하나가 신용조합의 축소였다.

16년 아끼따에서 시작한 《조청산타크로스》활동을 통해 각 県 어런이들과 그 가족들과의 련계를 강화하고있다.

09년, 도호꾸조고가 휴교됨으로써 지역조청운동을 맨 선두에서 이끌어나가는 핵심력량이 줄어들었다. 이는 해가 바뀔수록 눈에 보이게 첨예한 문제로 나타났다. 한편 이전시기부터 도호꾸 각 県에서는 신용조합에 소속한 동포청년들이 운동의 주력으로 되여있었는데 10년대 이후 여러 조합의 지점, 출장소가 문을 닫게 됨으로써 동포청년들의 수가 극감되였던것이다.

조성된 객관적조건은 조청운동에 큰 후과를 남기였다. 그동안 일본당국의 반총련, 반공화국책동, 민족교육에 대한 차별정책으로 인해 동포사회를 둘러싼 상황은 어려워지기만 했다.

미래에로의 씨앗을

하지만 이곳 청년들은 결코 주저앉지 않았다.

《상황이 어려워진 요인을 객관적요인에서 찾는것은 쉽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동포사회는 망한다. 어떤 상황에 놓였다 해도 일군들과 열성자들이 새로운 방도를 모색하고 실행하면 반드시 난국을 타개해나갈수 있다.》(김성길간사장)

19년부터 새로 시도한 우리 말교실 《이으리》

이 정신은 오늘날 조청원들에게도 맥맥히 계승되고있다.

12년전부터 지역운동에서 역할을 놀아왔던 조청 미야기현본부 한승필부위원장(30살)은 《그동안 東日本大震災시기의 동포구원활동이나 조청반 반장으로서의 사업, 여러 지방을 찾아 많은 경험을 쌓는 과정에 조청활동의 중요성, 동포들끼리의 이어짐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며 《이제는 후배들에게 조청운동에 계주봉을 넘겨주는 시기가 되면서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남겨주겠는가, 동포사회의 앞날을 내다보고 지금 무엇을 해야겠는가. 이를 항상 모색하고있다.》

조청 미야기현본부 겸 도호꾸지방위원회에서는 18년에 시작한 24기에 들어 새로운 활동에 도전하면서 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해나가고있다.

작년에는 코로나재앙속에서 정보통신망을 리용한 동영상콘텐츠의 운영을 시작하였다. 촬영, 기획, 편집, 출연은 모두 조청원자체에 힘으로 해내고있다. 《영상을 본 도호꾸동포청년들이 재일조선인로서 조청과 련계를 가졌으면》 하는 안목으로 시도한 사업은 지역조청원들은 물론 일본각지 조청원들속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조청운동의 하나의 전형을 창조해나가고있다. 한편 19년부터는 일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우리 말 교실 《이으리》도 개강하여 민족교육의 고수발전을 위해 힘을 기울이고있다.

16년에 아끼따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조청도호꾸주최 《조청산타크로스》활동은 현재 후꾸시마를 포함한 도호꾸 6현을 망라하는 사업으로 발전되였다. 작년에는 미야기현 토요아동교실 《꼬맹이》어린이들을 포함하여 50명이상의 어린이들에게 조청원들이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보내였다.

작년에 시작한 유튜부를 통한 활동은 다방면에서 반향을 일으키고있다.

한편 조청일군들이 각 현에서 진행되는 동포행사에 찾아가 동포청년들과의 련계를 끊임없이 강화해나가는데도 각별한 힘을 기울이고있다. 끈질긴 사업이 은을 내여 작년에는 오랜만에 야마가따에서 단독으로 조청모임이 진행되였다.

24기부터 조청 미야기현본부 겸 도호꾸지방위원회를 책임지는 오룡우위원장은 말한다.

《사실 아무리 노력해야 어쩔수 없는 경우도 있다. 지금 벌리는 활동이 래일 곧 결실을 맺는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속에서도 할수 있는 일이 있고 해야할 일이 있다. 조청도호꾸지방위원회를 결성한 선배들처럼 우리도 현 상황에 맞는 조청운동을 계속 모색하고 실천해나갈것이다. 그 과정에 얻은 성과와 경험이 미래의 조청운동, 도호꾸동포사회의 밝은 앞날에로 꼭 이어질것이다.》

(정용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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