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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묶음 《삶의 이야기》 비 오는 날

2015년 07월 22일 14:51 주요뉴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옷고름을 날리며 학교에 다닌 나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옷고름을 날리며 학교에 다닌 나날

하늘은 우리편 / 조나미

컴컴한 하늘, 보슬보슬 내리는 비…

비 오는 날 아침 축축한 마음을 억지로 억눌러 비옷 입고 우산 쓰며 일터로, 학교로 가는 사람들. 아무리 문명이 발전해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것속의 하나가 날씨인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조종하려 한다. 즐거운 원족,  오랜만의 려행, 열심히 련습한 운동회… 오늘만큼은 꼭 개이라고 말이다.

5월 31일, 총련결성 60돐을 축하하여 東京중고 운동장에서 진행된 《대축제》.

며칠전부터 일기예보는 이날을 《비》라 예견하였었다. (아니, 그럴수가! 비가 오면 안돼! 동창생, 선생님, 다들 만나야 되는데… 꼭 개여야 해!)

모두가 그러했겠지만 나 역시 날씨가 좋아지라고 하늘을 향해 몇번이고 속으로 웨쳤었다.

동포들의 이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가닿았는지 이날 東京는 활짝 개였다. 꼭 개일것만을 원했었지만 그토록 해볕이 쨍쨍 내리쪼이리라고는 아무도 예측 못했을것이다. 덕분에 음료수는 순식간에 팔렸다.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며 안내원이랑 판매랑 후방사업을 맡아 분투하던   10대, 20대 시절이 어제일 같은데 이번 행사에서는 나는 어린 아들과 함께 《비빔밥레인저쇼》를 보자고 남먼저 달려온 엄마들중의 하나였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들,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선배와 후배들, 같이 사업한 동료들… 어딜 가나 그 누군가를 만나는 축제마당은 나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동창생 아들이 우리 학교 체육복을 입고 우리 말로 이야기하는걸 보고 가슴이 흐뭇해졌고 배워주신 선생님이 그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지금도 교원사업을 하시는걸 보고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에 안겨오는 모든것이 고맙고 사랑스럽고 귀하고 지키고싶은 풍경이였다.

이 풍경을 마련해준 하늘에 감사의 마음을 보내드렸다.

세찬 비바람이 불어도 온몸으로 막아나서며 민족을 지켜준 1, 2세 동포들이 계시여 오늘의 우리가 존재한다. 이제부터는 우리 새 세대가 나설 차례다.

비 오는 날. 비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친다 해도 우리의 손으로 어두운 구름을 밀어내고 하늘을 꼭 맑게 개이게 할것이다.

저 푸른 하늘을 항상 우러르며 오직 붉게 타는 태양만을 바라본다면 우리에게 못해낼 일은 없다.

하늘은 항상 우리편이다!!(西東京 中部지부 거주)

아버지 생각 / 리선향

금시 그칠것만 같은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내린다. 이렇게 온종일 비가 내리는 날에는 마음이 우울해지군 한다. 비가 며칠째 계속되는 장마철에는 더더욱 그렇다.

나는 해마다 장마철에 들어서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럴수록 아버지가 몹시 그리워진다.

내가 장래 희망을 꽃피울 결심을 안고 조선대학교를 향해 집을 떠나는 날, 우리 아버지는 입원검사를 받게 되였다. 건강을 자부하던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셨을 때 나는 별치 않을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아버지는 금방 퇴원하시고 장사를 계속하실것을 의심치 않았다.

조선대학교에서 한달을 지내다가 5월련휴에 京都에 돌아온 나에게 어머니는 검사결과에 대하여 들려주셨다.
아버지는 취장암이라는것, 암이 여기저기 전이되여서 수술을 하기가 힘들다는것, 반년도 살수가 없을것이라는것…
진단결과는 청천벽력과 같았다. 대학생활을 마음껏 즐기고있었던 나의 앞길은 막막해지고 나락에 빠진것만 같았다.

나는 대학에 있으면서도 자꾸 아버지가 보고싶어 울고 아버지한테 가겠다고 떼를 썼다.

아버지 병실에서 창밖을 보니 장마기에 들어섰는지 그날도 비가 내리고있었다.

자신의 병환에 대해 잘 모르는 아버지는 자주 돌아오는 나에게 고시랑고시랑 잔소리를 하셨지만 내가 병실을 찾아가기만 하면 대학에서의 생활이 어떠냐고 물어보시고 내가 해드리는 대학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 그래서 조선대학교에서 많이 배우고 교원이 되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거듭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리고 아버지도 몸을 빨리 회복하고 조대 졸업식에는 꼭 참가하겠다고 웃으며 약속해주셨다.

이것이 지금부터 25년전일이다.

아버지는 그해 여름, 장마가 개이기 전에 조용히 영영 눈을 감으셨다.

의사가 이야기하던대로 반년도 살지 못하시였다. 조선대학교 졸업식에 참가는커녕 내가 교원으로 사업하는 모습도 못보시고 나하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우리 학교를 다녀본적이 없으신 아버지이지만 나와 녀동생을 조선학교에 보내주시고 떳떳한 조선사람으로 자라라고 키워주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의 《뜻》은 살아있다.

오늘 아이들을 조선학교에 보내고 이역땅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바로 아버지의 《뜻》인것이다.(문예동京都 문학부장)

비가 내려도 괜찮아 / 권윤희

지난 5월 17일은 우리 학교 운동회 날이였다.

밖에서 진행하는 행사때마다 걱정되는것은 날씨이다.

여느해처럼 이번 운동회를 앞두고도 날씨가 어떤지 걱정이 앞섰다.

해마다 운동회 날이 다가올 때면 주간날씨예보를 보면서 《비》라는 말 한마디에 예민해지군 한다. 그래서 사흘전, 이틀전, 하루전 낮, 밤 하고 앞으로 어느때에 얼마나 비가 내리는가 하는것을 몇번이고 확인하는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예행련습은 할수 있을가, 운동장 장식은 어느정도까지 해놓을수 있을가 하고 이것저것 머리를 굴린다.

전날 밤부터 당일 새벽에 걸치는 시간의 날씨가 아주 긴요한 문제로 나선다. 이른바 《물빼기》가 제기되느냐 안되느냐 하는것때문이다.

우리 학교 운동장은 바닥이 언틀먼틀하며 물도 잘 빠지지 않아 웅덩이가 생기기 쉽다. 그러니 그 사이에 비가 오면 당일아침 일찌기 출근하여 미력하나마 운동장에 고인 물을 스폰지로 빨아내여 마르도록 작업해야 한다.

다행히도 최근 몇해동안은 좋은 날씨를 만나 전날까지 작업은 거의 끝내여 당일을 맞이할수 있었는데 《물빼기》는 운동회련습기간에 한번은 꼭 나오는 이야기거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 《물빼기》작업이 어쩐지 재미나고 마음이 훈훈해지는 일로 여겨지는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이곳 동포들과 茨城초중고에 다니는 졸업생들이 당연한 일인것처럼 이미 약속이나 해놓은듯이 학교에 나와 일손을 도와주기때문이다.

물론 비물을 빤 스폰지를 짜고 또 짜니 손은 시리고 운동화는 진흙투성이가 되고 허리가 아프다느니 언제까지 하면 되느냐느니 하는 소리도 들려오지만 여러 사람들이 모이니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튀여나와 즐겁기도 하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그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행사를 함께 빛내이자는 주인된 자세와 립장에 서있으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정말 말그대로 《동포학생대운동회》임을 간직하게 된다.

작업을 끝내여 잠시 휴식하는 얼굴들은 구름을 뚫고 쏟아져내리는 해살처럼 눈부시다. 그 환한 얼굴들이 등교해온 학생들을 따뜻이 맞아준다.

아침 잠에서 깨여나 비소리를 듣게 되면 어쩐지 기분은 침울해진다. 그래도 이런 일들이 기다리고있다면 비가 오는것도 싫지만은 않겠지…?(東北초중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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