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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청선구자회의 2013〉토론(요지)・조청사이따마 동부지부 최룡철위원장

2013년 07월 03일 16:06 동포생활

조선청년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 안고

나는 초급부 5학년까지 사이따마조선초중급학교에 다녔으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아끼따에 이사한 후 일본학교에 다니게 되였다. 사이따마에서 다시 살게 된 리유는 전문학교 졸업후 취직하게 된 회사가 사이따마에 있었기때문이다.

나서자란 사이따마에 돌아와 조청지부에 자기가 돌아왔다고 편지로 알렸다. 어느날 새로 동부지부를 담당하게 된 조청일군이 우리 집을 찾아와 하루밤 자고 돌아갔다. 정열적이고 진실하며 자기 활동에 대한 확신에 넘친 그의 인정미있는 모습에 감동하게 되였다. 그는 매일과 같이 찾아오면서 동포들이 놓인 차별적상황이나 조국의 정책과 총련조직의 활동의 정당성에 대하여 정열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그 과정에 나는 동부지역의 조청활동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게 되였으며 주동적으로 나서는 결심을 다지게 되였다.

우선 사람을 모으기 위해 우리들은 지부에서 받은 명부를 가지고 그 대상과 직접 만날 때까지 한집한집 꾸준히 찾아갔으며 본인을 만나면 반드시 련락처를 교환하고 함께 식사하러 가는 날을 정하였다. 그동안 방문담화와 개별담화의 련속이였으며 전차를 놓치고 집으로 못돌아갈 때도 있었다. 조청활동에 대한 경험을 목적의식적으로 축적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다른 지역조청원들과의 교류모임도 조직하였다.

꾸준한 활동과정에 창조된것이 현재 조청사이따마에서 일반화되고있는 동맹원방문담화파일과 동맹원노트이다. 파일은 방문담화시에 가져가는 잡지 《새세대》와 선전물이 정확히 전달되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것이며 노트는 방문담화시에 이야기된 내용들을 적어 모두가 정형을 공유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다.

1년 6개월에 걸친 3명의 《뜨거운 남자》들의 꾸준한 노력에 의하여 마침내 2012년 4월 15일, 고시가야반이 재건되였으며 4월 28일에는 소우까미사또반이 재건되였다. 그를 계기로 우리들은 반위원회와 조청학습반, 방문담화활동을 비롯하여 여러 행사들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고있다.

나는 올해 4월말부터 5월초에 《조청일군대표단》의 한 성원으로 조청사이따마를 대표하여 사회주의조국을 방문하였다.

나는 조청지부 확대상임위원회(6월 22일)에서 조청지부위원장의 중책을 지니게 되였다. 일본사람처럼 살아온 나를 떳떳한 조선청년으로 재생시켜준 우리 학교와 조청조직, 우리 부모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싶다.

나는 조청사업에서만 민족의 넋을 심어주고 민족의 넋을 되찾을수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슴에 새겨 조청지부위원장으로서 자신의 청춘정열을 다 바쳐나갈것을 굳게 결의다지고있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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