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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마초중, 먼거리통학생의 걱정해소

2013년 04월 11일 14:47 민족교육

5일에 진행된 입학식에 참가한 새 입학생들과 부모, 관계자들

군마조선초중급학교 입학식(5일)에는 총련 군마현본부 최광림위원장과 동교 안중근교장을 비롯한 일군들과 학부모, 동포, 재학생들이 참가하였다. 그속에는 먼거리통학을 하게 된 학생과 부모, 그 지역 일군, 동포들도 있었다.

3대에 걸쳐서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에 걸쳐 군마초중에 다니게 된 렴아유학생. 한 집안에서 3대에 걸쳐 이 학교를 다니는것은 《학교력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안중근교장은 입학식 인사에서 가정호수가 지난 학년도에 비해 4호 불어난 사실과 함께 오래간만에 도모지역에서 신입생이 들어온데 대해 언급하고 《우리 교원들이 책임지고 잘 돌보겠으니 안심해서 학교에 보내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오따시에 사는 렴아유학생은 통학시간이 왕복 3시간 걸린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특별조치》가 취해지게 되였다. 등교시간에는 부모가 자동차로 도중역까지 전송하고 거기에 마중하러 오는 중급부생이 함께 학교까지 데리고간다. 하교시간에는 도중역까지 교원들이 인솔하고 부모가 마중나온다.

먼거리통학을 하게 된 렴아유학생

아유학생의 아버지 렴성대씨(34살)는 나어린 초급부생에게는 통학이 힘들지만 《우리 말과 글을 배우고 민족의 넋을 심어주는 우리 학교에서 배워 떳떳한 조선사람으로 자라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있다.

그에 의하면 먼 통학길에 대한 불안은 학교측과의 긴밀한 련계가 해소해주었다고 한다.

그의 안해 안미령씨(32살)도 먼거리통학을 시키는데 대해 《아무 걱정이 없다.》고 말한다.

아유학생의 동생도 2년후에 입학시키게 된다고 한다.

작년에 결성된 도모지역청상회 회장직을 맡는 렴성대씨에 의하면 도모청상회 회원들속에서도 먼거리통학을 마다하지 않고 앞으로 아들딸을 입학시키겠다는 회원이 있다고 한다.

아유학생의 할아버지가 되는 렴수소씨(63살, 세이모지역상공회 고문)는 어릴 때에 규슈에서 살길을 찾아 군마에 와서 당시 다까사끼에 있었던 조선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력사상 처음으로 3대에 걸쳐 군마초중에 다니게 되였다는 사실을 입학식에서 한 동교 교장의 인사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그는 《아이를 우리 학교에 보내게 된 아들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바가 많았다. 우리 학교는 꼭 있어야 한다. 손자의 입학이 도모지역에서 학생수를 늘이는데서 돌파구가 되면 좋겠다.》고 감회깊이 말하였다.

입학식이 끝난 다음 새 1학년생들은 군마현청상회에서 마련해준 교복을 차려입고 여러 단체들에서 보내온 선물들을 받아안았다. 렴아유학생의 얼굴에는 입학식날을 맞이한 기쁨이 담뿍 어려있었다.

대책위의 활동

1년전, 총련본부산하 군마현민족교육대책위원회의 활동이 보다 활발해졌다. 총련본부, 지부, 현상공회, 조청본부, 녀성동맹본부, 현청상회, 학교 교직원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전기관적인 운동으로 《군마의 민족교육을 사수보존》하는데 힘쓰고있다.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고 실천활동을 적극 벌림으로써 학교를 중심으로 한 군마애족애국운동의 활성화에 한몫하고있다.

위원회가 결성되기까지는 민족교육에 대해 잘 몰랐다는 부부가 있다. 상담하는 창구가 거의 없었기때문이다. 어린이써클이 기능하고있었으나 거기서 민족교육에 관한 전문적인 해설을 들을수는 없다. 그러나 민족교육대책위원회는 동포들의 의견과 요구를 수렴하여 조직적인 대책을 세우고 착실히 실천에 옮김으로써 고민을 털어놓는 동포들에게도 다각적인 전문지식과 방조를 줄수가 있다.

먼거리통학을 하는 학생에 대한 대책도 이 위원회가 세웠으며 입학시킬가 말가 고민하던 가정에 초급부생을 데려가 그 집의 입학대상 어린이와 교류시키는 등 제때에 필요한 대책을 세워왔다.

위원회 성원으로 활동하고있는 서미애씨(37살, 녀성동맹 군마현본부 자녀교양부장, 비전임)는 앞으로도 대책위원회사업에 총력을 기울이며 구체적인 실천활동을 통해 학생수증가를 위해 이바지하겠다고 말한다.

1940년대말, 다까사끼에 자리잡던 군마학교는 일본경찰의 습격을 받고 페쇄당하였다. 당시 초급부생이였던 주영호씨(72살)는 그 광경을 잊을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1972년에 락성된 현 교사의 건설위위원회 부위원장이였다.

주영호씨의 외손자가 이번에 입학하였다. 학교와 더불어 걸어온 그는 《손자가 우리 학교에 다니게 되여 정말 감개무량하다.》고 말하면서 민족교육을 지키고 부단히 발전시키기 위해 계속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리동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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