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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정숙평양제사공장 최혁 기사장

2012년 12월 17일 10:10 공화국

《인민들에게 비단옷을 입히시려고》/《불합격고치》로 명주실 생산확대

평양제사공장(당시)을 현지지도하시는 김정일장군님(2009.1.15 조선중앙통신)

김정숙평양제사공장(중구역, 2009년 8월 27일에 평양제사공장을 개칭) 최혁 기사장(45살)은 1살때 아버지를 잃고 만경대혁명학원에서 배우며 성장하였다. 나라의 혜택속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김정일장군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이께 사업실적으로 기쁨을 드리는것은 《자식된 도리》로 간직하여왔다고 한다.

최혁 기사장(사진 정무헌기자)

2009년 1월 15일, 그는 김정일장군님을 자기 직장에 모시였다. 그날도 장군님께서는 수수한 야전복차림이시였다.

《명주실을 생산하는 우리가 장군님께 따뜻한 비단옷 하나 해드리지 못한 송구스러운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그이께서 한평생 우리 인민들의 입는 문제해결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로고와 심혈을 기울이셨는가.》

그날 장군님께서는 여러 직장들에 들리시여 로동자들을 따뜻이 고무격려해주시였다. 그리고 기술개건정형과 생산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서는 불합격규격의 고치를 가지고서도 실을 뽑아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날 공장의 일군들이 대소한의 추위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자기들의 직장을 찾아주신데 대해 죄송한 마음을 말씀올리자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의 입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날씨도 가리지 않고 이곳 공장을 찾아오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공장의 일군, 종업원들은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과업을 관철하면서 그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현지지도 이후 새로 꾸려진 견방직공정의 일부(사진 정무헌기자)

《자신께서는 아직 비단옷을 한번도 입어보지 못했다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 말씀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이제라도 장군님께서 다시 오시지 않는가 하는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과업은 관철되였다. 공장에서는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의 연구사들과 공동으로 연구하여 2009년 7월에는 불합격고치를 가지고 실을 뽑는 견방직공정을 새로 꾸렸다. 견방직공정의 시동으로 명주실의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다.

《김정은원수님께서 계시여 장군님의 혁명력사는 끊임없이 이어질것이다. 나도 자식된 도리를 계속 다해나갈것이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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