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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평양교예단 배우 한정심씨가 체험한 《꿈의 실현》

2012년 10월 18일 14:35 공화국

《우리에게는 날개가 있다》/평양국제영화축전 출품작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에 주연

【평양발 김지영기자】한편의 예술영화가 조선교예배우의 《전형》을 창조하였다. 평양국제영화축전(9월 20-27일)에서 상영된 예술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Comrade Kim Goes Flying)》. 한정심씨(30살)는 녀주인공 《김영미》를 맡았다. 그는 평양교예단의 현역배우이다.

한정심배우(사진 주미래기자)

힘들었던 《첫 연기》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는 지방의 어느 탄광마을에 사는 처녀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평양에서 공중교예배우로 전신하여 성공하는 과정을 그렸다. 한정심씨는 자신의 영화출연이 결정되였을 때 《떨리기도 하였지만 좋기도 하였다.》고 한다. 화려한 분위기를 띄우는 교예배우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면 그의 향상심, 무엇이든 도전하려는 배우의 마음이 남달리 강하다는것을 알수 있다.

대본을 받아보았을 때에는 《주인공의 인생행로와 자기의 경력이 류사하다고 생각》하였다. 어린시절 평양교외에서 살던 한정심씨는 젊은 시절 운동선수를 희망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교예배우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막상 《김영미》를 맡아해보니 대본에 따르는 연기는 상상하던것보다 어려웠다. 《신인배우》는 대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사람을 똑바로 보지도 못했다. 빈방에서 두달간 밤을 새워가며 훈련하였다. 연출가와 갈등도 빚었다. 그만두고싶어 우는 때도 많았다.

촬영이 시작되였을 때에는 너무 힘들어 《끝이 언제 있을가.》 하고 마음이 약해지기도 하였지만 6개월후에는 《김영미》의 줄거리를 담은 필림이 완성되였다. 교예밖에 몰랐던 배우가 자기 맡은 대역을 끝내 해낼수 있었던 비결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말할 때 한정심씨는 영화주인공의 대사를 인용한다.

《우리에게는 날개가 있다.》 – 공중교예배우가 되여 하늘을 나는 꿈을 실현한 《김영미》에게 있어서 《날개》란 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조선의 사회주의, 집단주의정신이 몸에 배인 사람들의 뜨거운 정성과 지원을 이르는 말이였다. 영화에 처음으로 출연한 한정심씨에게도 《날개》는 있었다.

《함께 출연한 로배우들이 방조를 주며 힘을 실어주었다. 연출가는 나를 친딸처럼 생각하며 하나하나 타일러주고 마지막까지 이끌어주었다. <김영미>는 동지들의 믿음과 사랑속에 탄생한것이다.》

완성된 필림의 시사회가 진행되였을 때 《화면이 기름지다.》, 《장면장면이 알차다.》는 좋은 반향들이 나왔다. 한정심씨는 《그 수준이면 주인공이 연기를 편안하게 한다.》는 평가를 들었을 때 《제일 기뻤다.》고 한다.

영화의 한 장면

성공비결은 집단주의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는 카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남조선의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였다. 언론매체들은 《북조선에서 만들어진 로맨틱 코메디》에 큰 관심을 표시하였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탄광처녀가 꿈을 이루는 《북조선의 성공이야기》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우리 나라의 현실을 알지도 못한 사람들의 말이다. 조선에는 동지적관계가 있다. 꿈을 이루자고 노력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을것이다.》

한정심씨도 영화의 줄거리처럼 자기 꿈을 이루었다. 수도교외에 살면서 텔레비죤에서 교예무대를 즐겨보던 소녀가 11살때 평양교예학원의 시험을 쳤다. 《김영미》와 마찬가지로 동작을 잘못해 불합격을 당했다. 어머니의 특별지도를 받으며 맹훈련을 계속하던 소녀는 두달후에 실시된 2차 시험에서 합격하였다.

22살에 학원을 졸업한 다음부터는 공중교예배우로서 활약하였다. 도이췰란드, 네데를란드, 에스빠냐,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순회공연을 진행하였다. 그가 출연한 공중교예작품이 2003년과 20011년에 국제교예축전에서 1등을 쟁취하기도 하였다.

조선의 교예가 세계의 최고수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고난도기교를 완성하며 부단한 발전의 길을 걸어갈수 있는 비결도 역시 《집단주의에 있다.》고 한정심씨는 말한다.

《조선의 교예배우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무대에 서는 일이 없다. 특히 외국에서는 무엇보다 조국의 영예를 떨치려고 한다. 배우들도 모두 동지적으로 결합되여있다. 한개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하나의 가정과 같으며 혈육과 같이 서로를 대해줄 때 그 높은 기교가 성공될수 있는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

조국을 안고 살자

한정심씨는 새 가정을 꾸렸다. 그는 올해 5월에 결혼하였다. 남편은 교예관람을 위해 극장을 자주 다니던 청년이였다. 교예배우는 공연을 보장하느라 일반적인 가정부인역할을 다하지 못하는데 남편은 《모두 리해하고 배우로서 더 크게 성공하라고 뒤에서 밀어준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동지의 기대에 보답하여 <로배우>라고 불리우는 나이까지 공중교예의 제일선에서 활약하는것이 목표이다. 더 많은 나라에서 공연하여 사람들로부터 영화에서 보던 <김동무>가 바로 그녀라고 변함없이 격려와 칭찬을 받는 배우가 되고싶다.》

일본공연이 실현되는 날에는 꿈을 키우는 재일동포 새 세대들과 꼭 만나고싶다고 한다.

《해외공연을 나갈 때면 나도 조국이 그리워진다. 일본땅에 살아도 민족의 넋을 잊지 않고 꿋꿋이 살아주기 바란다. 힘들어도 용기를 가지고 조국을 가슴에 안고 산다면 동무들의 꿈도 반드시 이루어질것이다.》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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