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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단결의 중심에서 / 최고사령관의 령도력 5〉 인민의 여론, 《2012년구상, 무조건 한다》

2012년 03월 21일 15:32 공화국

《고난의 행군세대》의 의지

【평양발 김지영기자】2012년 1월 1일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을 찾으신 김정은최고사령관께서는 병사들의 생활을 헤아리시는데 많은 시간을 내시였다.

병사들의 생활

훈련과 전투동원준비를 료해하신 다음 병실, 세목장 등을 돌아보시였는데 부관이 시간이 퍼그나 흘렀다고 보고를 드리자 그래도 식당은 다 돌아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밥먹는 칸에 들어서시였다. 그때의 광경을 《로동신문》은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간장색갈도 살펴보시고 식당안의 온도도 가늠해보시면서 장군님께서는 늘 병사들이 더운곳에서 생활하고 더운곳에서 밥을 먹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는데 지휘관들은 장군님의 말씀을 언제나 명심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최고사령관의 군부대시찰에 관한 일화에는 그에 앞선 줄거리가 있다. 몇해전 김정일장군님께서 어느 군부대를 찾으시였을 때 이렇게 말씀하신적이 있다. 지금 젊은 병사들이 고난의 행군시기에 자랐다, 지휘관들이 잘 돌보아주어야 한다, 자기가 더운 곳에 있고 배부를 때에도 병사들은 춥고 배고플수 있다고 생각하여야 한다…

1990년대 후반기의 고난의 행군 – 그때 사람들은 식량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는 구호를 불렀다. 조국이 전대미문의 시련을 겪었던 그 시기의 추억을 최고사령관께서도 간직하고 계신다. 1994년 김일성주석님께서 서거하신 후 사회주의조선을 수호하기 위해 선군장정의 길을 걷고 걸으신 장군님께서는 명절도 휴식일도 야전차, 야전렬차에서 보내시였다. 생신날도 쉬지 않으시고 집에도 들리지 않으시였다. 그 강행군의 가장 가까운 목격자, 체험자가 바로 오늘의 최고사령관이시다.

대국상을 당한 인민들은 최고사령관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있다. 군부대시찰보도의 구절구절을 새기는 독자, 시청자들이 있다.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에 접하기전에는 장군님의 《후계자》가 벌리는 활동의 소식이나 그이의 인품을 전하는 일화들이 대대적으로 공개되는 일이 없었다. 본인이 만류하시였다고 한다. 그런데 민심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나로 뭉쳤다. 장군님을 잃은 상실의 아픔이 컸던만큼 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을 찾는 인민들의 충동도 강렬하였다.

청년들의 발걸음

최고령도자의 자애로운 영상,소탈한 인품이 민심을 결집시키고있다. 인민의 여론에 튼튼히 의거한다면 그 어떤 난관도 극복할수 있으며 대담하고 통이 크게 일판을 벌려나갈수 있다.

최고사령관의 령도를 받드는 당과 국가, 군대의 책임일군들은 달리는 야전렬차에서 순직하신 선대수령에 대한 경모의 정을 안고 그이께서 못다하신 위업을 끝까지 계승완성할 각오를 다지고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나날에 장군님의 《가장 가까운 전사》로 계시던 최고사령관은 드놀지 않는 유훈관철의 지침인것이다.

《오늘의 상황은 조국해방, 전쟁승리의 대사변을 준비하던 그때의 상황을 방불케 한다.》 어느 로일군의 소감이다. 2012년에 강성국가의 대문을 열어제낀다는 장군님의 구상을 한치의 양보도 드팀도 없이 실현하여 민족사의 새로운 장을 펼쳐나갈 결심의 표현일것이다.

유훈관철로 조국의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주력부대는 두말할것없이 청년들이다. 장군님의 명제를 인용한다면 《발은 자기 땅에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과업을 지닌 새 세대들이다. 낡은것을 버리고 새것을 창조해나가야 할 이들도 《총포성없는 전쟁》속에서 성장한 세대, 잊지 못할 쓰라린 체험을 간직한 《고난의 행군세대》인것이다.

시련속에서 체득한 불굴의 의지야말로 이들의 공동재산이다. 최고사령관께서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일군들이 유훈관철의 결의를 담아 올린 편지에 이런 친필을 남기시였다.

《청년들의 힘찬 발걸음에 의해 강성할 래일은 더욱 앞당겨지게 될것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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